오늘의 파국을 이야기하기 위해, 시간을 잠시 돌릴 필요가 있다.
어제 저녁 먹고, 네이트온으로 말 걸어 온 학부 후배와의 대화
(네이트온 대화명이 약간 저속하여 고칩니다-_-) 



나쁜후배 님의 말 :
혹시 서울에서 길을 잃으면 연락 드릴께요 거두어주세요 ㅋㅋ

따라쟁이 님의 말 :
올때 병맥이나 몇 개 사 와

나쁜후배 님의 말 :

나쁜후배 님의 말 :
자정이 넘어도 안때릴거죠?

따라쟁이 님의 말 :
열두시에 오면 두 병

따라쟁이 님의 말 :
삼십분 늦을 때마다 한 병씩 추가



_0130
졸린 눈 비벼가며 꾸역꾸역 pdf읽고 있는데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. 행당동에서 택시 타고 온단다. 할증 붙어도 얼마 안 나오겠군. 안주는 뭘 사갈까요 묻길래 그냥 대강 사오라고 하고 말았다. 대학원생이 뭔 돈이 있겠어. 그냥 과자 한 봉지 사오고 말겠지. 뭐. 녀석 얘기 들어주며 -5점 정도는 감수하지 뭐. 통화 마친 후, 녀석이 이시간까지 뭘 했는지 감이 왔다. 졸음 깰 겸, 드라이하게 트윗 하나. 





_0200
녀석이 왔다. 그것도 폭탄을 들고!

두둥- 이게 내가 '착한시민프로젝트'하고 있다는걸 아는 사람이 할 짓인가? 

"야! 이 !!@@##$$%%^^&&아!! 내가 분명히 병맥에 대강 사오랬지?"
"형은 맥스 좋아하잖아요. 근데 맥스는 병이 없더라구요."
"너 내가 뭐 하는지 몰라?"
"에이, 형도 유난은... 이게 무슨 일회용품이에요? 재활용 다 되는데? 까칠하시긴...(웃음)"
"..."
"형 저 좀 씻고 올께요(휘릭)~"

삼초동안 고민 또 고민... 욕실에서 돌아오면 녀석에게 원펀치 쓰리 강냉이를 시전하고 내쫓은뒤 병맥으로 바꿔오라고 할까... 하다 올 초 장래를 약속한 애인과 헤어지고 대학원 프로젝트에 치이다 인간다운 삶 좀 살아보고자 하는 요즘 녀석의 일상이 생각이 미쳐 결심... 그래. 내가 나쁜 시민 되고 말자. 뒤집어 보면,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기자는 생각에...



나윤선의 이번 앨범을 넣고, 새벽 두시가 허용하는 최대 볼륨까지 올린 다음 캔맥주를 땄다(4개 마셨으니... -5 * 4 = -20!!) 저녁을 안 먹었다며 육포, 만두, 콘칲, 비엔나쏘세지 봉지를 다 뜯고 꾸역꾸역 먹는 와중에 나도 만두 두 개, 다수의 비엔나 쏘세지, 육포 몇 가닥, 콘칲 몇 조각을 먹고 말았으니... (-5 * 4 = -20) 이것도 모자라 확인사살로 녀석이 이걸 들고 온 까만 봉다리 한 장(-5). 결국 45점이 한순간에 날아갔다. 어떻게 50점까지 올려 놨는데... ㅜㅜ



지난학기로 박사수료를 마친 녀석은 박사년차가 심하게 나는 선배 셋을 위에 두고, 녀석 이후로 연구실에 박사 진학하는 후배가 없어 고난의 행군을 몇 년째 밟고 있다. 특히나 선배들과 년차가 심하게 나는 걸 더 힘들어했다. 진학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던 7년 전의 따라쟁이가 생각했던 서른 둘은, 박사과정 학생이었지 지금의 6년차 대리가 아니었으니, 어쩌면 나는 녀석보다 먼저 연구실에 들어가 머리 북북 긁어가며 공돌이 공부와 과업을 뛰는 게 자연스러워졌는지도 모르겠다. 하여튼 형이 갑자기 진로 틀어 내가 고생이라는, 녀석의 18번 레파토리에 그냥 웃어주고, 방금 전 녀석이 집까지 늦은시간에 바래다 준 한 살 연상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캔 또 한 캔... 형, 근데 이 아가씨 언니가 둘 인데, 이쪽도 급하데요. 그래서? 함 보실라우? 아, 됐네. 에이, 뭐 딱히 만나는 사람도 없잖수. 맘가는 사람은 있는데... 오오오~ 얘기 좀 해 봐요! !!@@##$$%%^^&&!!



_0930
중전과 금상은 볼일이 있다며 일찍 외출하셨다. 아침을 대강 차려먹이고 당연히 식후땡. 커피 한 잔? 감사합니다~ 삼베천을 꺼내어 어제 공수해 온 커피를 뽑는다.(+5) 

"형, 저때문에 미안해요. 점수 꽤 많이 깎였겠네."
"알면 됐다. 앞으로 네놈도 집구석에서 마실 때 병맥 마셔."



_1500
계속해서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몸이 찌뿌둥해 산책. 집구석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주말에 개방하는 홍릉수목원이 있다. mp3와 함께 조용히 빠르게 산책 한 바퀴. 이런저런 쓰레기, 일회용품 줄여야 이런 공간을 지켜나갈 수 있겠지. 너무 비약이 심한 생각인가 하면서 씁쓸히 웃었다. 나는 불량시민...


주말에 내가 할 일 중 하나는 떨어진 우유를 사다 메꾸는 일이다. 여느 때처럼 돌아오는길에 대형마트에 들려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녀석을 하나 들고 온다. 종이팩 우유라 감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감점(-5), 장바구니로 (+5) 메꾼다. 그런데 대형마트에 무인계산대가 생겼다. 네 개의 무인계산대가 생기고 점원 한 명이 그곳을 지켜보고 있다. 올해들어 공부하면서 생각해보는 영역이 좀 많이 늘어났는데, 좀 많이 놀랐다. 노동의 변화가 여기까지 왔구나. 세상에... 네 명을 고용할 수 있는 걸 한 명으로 줄이고, 게다가 그 한 명의 노동은 안내라고 하지만 사실상 감시의 역할. 일단 한번 해 봤는데, 나쁘지 않다. 인식도 잘 되고, 줄 안 서도 되고. 기분은 찜찜하지만... 집구석 돌아와 검색해보니 이미 5년전에 일부 매장에 도입이 되었단다. 이런식의 변화가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. 



_2230
조용히 돌고 와서 저녁 먹고 다시 늦깎이 학생이 해야 할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이시간이다. 오늘은 좀 일찍 자야지. 내일은 친구들과 자전거로 한강을 달려보기로 했다. 



오늘의 점수: 어제까지의 점수(54) + 후배놈의 폭탄(- 45) + 삼베천 커피 드립(+5)
 + 마트 우유(-5) + 장바구니 사용(+5) = 14점 

최강의 불량시민 탄생 ㅜ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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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착한시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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