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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주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. 거기에 꽤 묵직한 과제도 하나 덜었겠다(지금 생각해도 월~수 사이는 악몽이었다-_-), 어중간하게 늙은 학생들은 지난주 이맘 때, 이번주에 한적한 잔디밭에서 막걸리 한 번 먹어보자 약속을 했더랬다. 그 D-day가 오늘! 

원래대로라면 같이 낮술 마시기로 한 지인들과 점심 같이 먹고 바로 한적한 잔디밭으로 갔겠지만 오전나절 학교에 휴가맞아 놀러온다는 친구가 밥먹자고 전화가 왔다. 어지간히 타이밍 못 맞추는 놈이다-_-+ 양해를 구하고 녀석과 나름 비싼 학교밥을 먹어주고 커피 한 잔. 당연히 내 물통을 내민다. 인문관 근처의 카페는 자기 컵 사용이 할인되지 않더라. 좌우간 (+5)

나를 찾는 전화. 녀석에게 양해를 구하고 절반쯤 마신 아이스커피가 담긴 물통을 들고 일행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가다 생각해보니... 그런데 막걸리잖아-_- PET병에 들어있을 확률이 9할 넘을... 아, 아마 안될거야-_-;;;;;; 

역시나 달려가니 초록색 장수막걸리 여남은 병이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더라. 이런 제길슨... 이제 와서 뺄 수도 없고. 에라 모르겠다. 형 나도 줘요. 눈물을 머금고 (-5)점을 각오하고 돗자리 앉으니 나에게 종이컵을 내민다. 이것까지 쓸 순 없지. 하고 커피가 절반 담긴 물통을 내미니 기겁을 한다. 이녀석아, 커피나 다 마시고 먹어. 아 됐네, 막걸리 라떼 마시는 셈 치지. 야, 꼴값도 적당히 떨어야 우리가 받아주지! 아 내가 다 먹을거야. 그냥 따라 줘요!

좌우간 이렇게, 남들 다 종이컵에 마시는 막걸리를, 커피 절반 남은 텀블러에 부었더니...
색깔은 대략 라떼 비슷한데 한 번 마셔보니-_-라떼는 개뿔... 커피향만 조금 나는 막걸리다. 
너 정말 괜찮냐는 표정으로 막걸리를 따라 준 K형이 묻는다. "워뗘?" 
최대한 과장된 표정으로 씩- 웃으며 "음~ 오이시이데스네!!(ㅜㅜ)"

지난 한 주 밀어낸 지독한 과제 이야기와 수업 얘기를 나누면서 잔을 기울이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. "탕수육 시키신 분!!" 뭐야, 이싸람들, 탕슉까지 시킨거야? 





제길... 오늘 제대로 폭탄 맞는구나. 그래 오늘 한 번 망가지자. 아, 이거 정말 힘들구나... (-5)점을 자각하고 배달된 탕수육 비닐 벗기고 나무젓가락을 습관적을 뜯는 순간(-5점)

내 가방에 젓가락하고 수저 있잖아!!

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종이포장 뜯긴 나무젓가락 들고 앉아있으니 동갑내기 리여사가 묻는다. 왜그래? 이거 일회용품이잖아. 아 진짜 가지가지 유난 떨어요. ㅋㅋㅋ 아프지않게 내 뒤통수를 툭 치는 K형, "손으로 먹어 자식아!" 내 옆의 S형도 씩 웃으며 "그래, 괜찮아. 손가락 소스도 쪽쪽 빨아먹어~"

이왕 포장 뜯은 거 어쩌랴... 그나마 대나무 젓가락이니까 집에 가서 쓰자 마음먹고, 어제 빨대를 담은 가방 앞 주머니에 나무젓가락을 담았다. 자리 털고 일어날까 하던 때에 K형 한마디. 

"따라쟁이야, 우리 사진이나 찍고 가자~"




더할나위없이 즐거웠지만 자리 털고 일어나며 점수를 생각하니 속이속이... ㅜㅜ

오늘의 점수: 어제점수(85) + 커피 내 컵 사용(+5) + 막걸리PET(-5) + 배달탕수육(-5)
 + 나무젓가락(-5) = 75점... OMG... ㅜㅜ


P. S. 유기자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 속이 쓰리다. "막걸리까 빠지는 날이 없네요. ㅎㅎㅎ" 쿨럭;;;
내 베스트 술은 맥주인데-_-a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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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착한시민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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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외계모녀 2010.10.08 23:56 신고  댓글주소  수정/삭제  댓글쓰기

    한 마디로 ... 대.박 !!!!!!!!!!!!!!!!!!!!!! ㅋㅋㅋ
    아이가 계속 아팠어요 그 와중에 광주로 숙박출장을 다녀와야 해서 ..
    밀린일기는 다녀와서 써야겠네~
    대중씨 일기 읽다가 단체사진에서 완전 뻥 터짐 ㅋㅋ
    그 K선배 ... 함 뵙고 싶네요 ㅋㅋㅋㅋ

    • 착한시민 2010.10.09 00:18 신고  댓글주소  수정/삭제

      [따라쟁이] 고민이에요. 조금만 사람들하고 부대끼면 안 쓸 수가 없네요. 그와중에 정신줄을 놓친 잘못도 있지만-_-;;;

      그 K형은 멋진 분임다.^^

      일기 기대할께요. =)

  2. 유 기자 2010.10.09 17:12 신고  댓글주소  수정/삭제  댓글쓰기

    ㅋㅋㅋ 아 이런 저 사진에서만큼은 마냥 즐거워만보요는데요. 캠퍼스 잔디와 돗자리와 막걸리와 배달음식. 그야말로 로망인데 일회용품 생각하면 접어야하는 일이네요 ㅠㅠㅠ

    • 착한시민 2010.10.09 21:00 신고  댓글주소  수정/삭제

      [따라쟁이] 거꾸로 생각해보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너무 편하고 쉽게 사는 거죠.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-_- 값싸지만 결코 값싸지 않은 것들인데. 하다못해 조금 신경써서 제 가방속에 있는 젓가락만이라도 꺼냈으면, 저 친구들이 모두 컵을 가지고 다녔으면... ~라면, ~라면.

      안쓸수는 없으니 줄이고, 놀더라도 조금 더 지속가능한 방식을 생각해봐야겠어요. 다른 사람들 표정이 참 예쁜데 여기서 보여드리긴 마음에 걸려서 아쉽네요. ^^;;;;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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